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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 진화의 역사를 추적하다, 진화유전학 #117 비엔나대학교 한소정 박사
#진화유전학#보노보#여성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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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03
<SHE DID IT >
진화의 역사를 추적하다, 진화유전학
비엔나대학교 한소정 박사(Ep.2)
한소정 박사는 진화유전학자로서 영장류, 특히 현존하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와 보노보의 종 특이적 형질에 대한 진화적 역사와 유전적 배경을 찾는 연구를 한다. 또한 생물정보학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숙주의 유전체 물질만이 아니라 병원균과 환경적 맥락까지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진화유전학이란?
©사진=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박사.
그는 4만 년 전 멸종한 고인류 뼈에서 DNA를 추출하여 유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고인류 유전체학(paleogenomics)"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고인류와 현생 인류와의 연결성이 발견되고, 인류의 진화 과정, 질병과 면역의 취약성 등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의 연구처럼 진화유전학은 인간을 포함한 이 생물들의 진화의 역사를 유전자를 통해 살펴보는 학문이다. 진화유전학자들이 인간의 유전체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의학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의 한소정 박사는 특히 침팬지, 보노보와 같은 영장류의 진화를 연구하는데, 이들의 유전자를 통해 이들이 언제 어떻게 서로에게서 갈라져 나왔는지, 그 이후 각 종의 특이적 변이는 어떠한 지 등을 탐구한다.
“진화유전학의 입장에서 우리의 공동 조상이 수백만 년 전에 있었고 우리 할머니가 똑같은 할머니인데 거기에서 우리가 갈라져서 먼저 인간이 갈라져 나왔고, 그 다음에 나중에는 침팬지, 보노보가 갈라졌는데 우리가 다 굉장히 다른 종이거든요.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해도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굉장히 특성이 달라요. 예를 들어 보노보는 평화로운 편의 종에 속하고 침팬지는 전쟁을 하죠. 그렇다면 인간은요? 전쟁을 하기는 하는데 평화롭게 지낼 줄도 알아요. 이렇게 중간 정도 있는 독특한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그럼 그게 왜 그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됐을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죠.”
한소정 박사와 같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진화유전학자들은 유전자와 유전체의 관찰과 비교를 통해 인간 특이적인 유전 변이, 보노보 특이적인 유전 변이들을 관찰하며, 이러한 변이가 대략 언제부터 존재하고 또 분화되었는지, 나중에 어떤 유전적 진화적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관찰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침팬지와 보노보 연구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추리해 가다

유전자, 유전체는 보통 ATGC라고 분류하는 4가지 유형의 염기, 즉 아데닌(adenine, A), 티민(thymine, T), 사이토신(cytosine, C), 구아닌(guanine, G)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침팬지, 보노보와 그 염기서열이 굉장히 비슷하다. 무려 약 3기가 바이트 정도 길이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개수의 이 염기서열이 있다. 염기서열이 책처럼 이어지는 모습을 실험실에서 ‘시퀀싱(sequencing)’이라는 작업을 통해 읽어내다. 우리 몸 안에 있는 DNA 조각을 디지털화해서 ATGC염기서열의 시퀀스로 컴퓨터상에서 읽어 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파일 유형으로 분류하고 서로 비교하며 유전과 진화의 정보를 찾는다.
“게놈 연구를 하려면 오염도 적고 신선한 샘플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야생에서 직접 샘플을 채취하는 것은 여러 가지의 제약과 어려움이 있어요. 다 멸종위기 동물이기도 하고 윤리적인 문제도 있어요. 가이드라인을 모두 지키면서 최대한 샘플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밀림을 다닌 적도 있어요. 하지만 생물학적 샘플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과정도 굉장히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주로 박물관에 기증된 자료를 통해서 시료를 얻는 편입니다.”
첨단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도자처럼 우리의 근원에 대한 지도를 찾아가는 연구. 그 지도는 우리의 근원을 인도할 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해서도 힌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진화유전학자가 느끼는 매력이다.
유전체 연구는 당장 어떤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보다는 과거로의 탐험이다. 거대한 유전자의 지도를 더듬어가며, 탐정처럼 실마리를 찾아 선사 시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기에 첨단 기술, 거듭되는 혁신을 추구하는 분야와는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노벨상을 타신 페보 박사님도 네안데르탈인과 현재 인류가 어떻게 유전 인자를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시며 수십 년간 막스 플랑크에서 연구 지원을 꾸준히 받으셨어요. 첨단 기술을 만든다기보다 사실을 발견하고, 원리를 규명하고 아는 것 자체에 되게 기쁨을 느끼는 학문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반드시 응용을 목표로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과학의 길들이 그러하듯 여기서 발견한 것이 다른 분야의 응용에 큰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유럽의 연구 환경이 조금 부러울 때는 이른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연구에 훨씬 더 포용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다.
“파스퇴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응용(applications of science)이 있을 뿐이다’라고요. 이 말에 저는 정말 동의하거든요. 기초 과학이 당장 응용을 생각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일어난 발견들이 나중에 응용으로 발전하죠.
박테리아 연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유전자 일정 부위를 가져와 삽입할 수 있는 크리스퍼 기술이 알려지면서 이에 착안을 해서 치료 등의 용도로 바꾸듯 전부 서로 아이디어를 주죠. 경계를 넘어 학제 간에 활발한 주고받음을 통해 응용 과학도 함께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의 여러 갈래, 내가 정말 원하는 연구를 찾아가기

한소정 박사는 분자생물학, 행동생물학을 거쳐 진화생물학, 그 중에서 진화유전학의 연구자가 되었다. 같은 생물학 안에서도 정말 자신이 추구하는 생물학의 분야를 찾고,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때론 혼자 부딪히기도 하고 연결고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음 지점으로 나아갔다.
“저는 분자생물학 석사를 하다가 전공을 옮겼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생물학이 다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생물학에는 여러 갈래가 있어요. 진화 생물학과 행동생물학을 비교하면 굉장히 다르거든요.”
행동생물학에서는 다양한 조건에서 동물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을 관찰해 기록하고, 그 기록의 분석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시작한다면, 진화유전학에서는 실마리를 유전자, 혹은 유전체 전체로 삼는다.
“석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아주 재미있었는데, 막상 연구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방법론 쪽으로는 유전학이 더 저에게 맞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를테면 행동생물학에서는 아프리카의 숲에 가서 최소 반년, 혹은 몇 년씩 지내면서 그 데이터를 채집해서 연구하죠. 지금 저는 영장류의 유전자를 시퀀싱 한 데이터, 책 분량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진화생물학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공유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다른 동물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더 정교하게 정의된다는 입장으로 접근하는데, 이렇게 관찰에 기반하는 그런 접근 방식이 저는 좋았던 것 같아요.”
나에게 더 맞고, 더 원하는 연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일본 교토-스페인 바르셀로나-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와 여러 연구기관을 거쳐야 했다. 때로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지만, 최대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늘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 교토에 갈 때, 그 당시에 이화여대에서 교토대학과 여러 교류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화여대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정보를 가지고 제가 자비를 들여 교토 학회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거기서 교토대학의 교수님을 만나서 연이 되기도 하고요. 제가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는 항상 도움을 받는 이들이 있었어요. 친한 사람이기도 하고, 다시 누구를 통해 소개받기도 하고요, 잘 모르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유학에서 이런 과정은 항상 생기는 것 같아요.”
진화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한국에서도 이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물론 가능하지만, 현재 아직은 해외가 공부하기에 환경이 더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관련분야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연구에 대한 지원도 풍부한 편입니다. 특히 유럽에서 이런 연구가 활발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여러 기회를 찾아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 분야를 굉장히 잘하시는 연구자분들이 계세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신다면, 그분들을 찾아가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소정 박사는 한국에 남아있는 여러 가지 유골들도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한국에도 선사시대의 뼈들이 남아있어요. 인류 역사 진화사로 보면 한국에서도 흥미로운 시료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 분야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에 관심이 있고 한국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하니까 그런 좋은 시료들을 가지고 활발한 연구가 되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에 우리만 있는 오래된 유골 등에서도 또 하나의 유전체를 찾아갈 수 있다. 이런 추적은 한국인은 어떻게 유래했고, 언제부터 이런 특징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어떤 유전인자들을 누구에게서 받아왔는지 등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소정 박사는 조금은 설레는 듯한 목소리를 설명했다.
세월을 지나 부식된 DNA를 관찰하여 진화의 궤도를 추적하는 진화유전학자. 한소정 박사는 유전자의 특징을 살피고 이를 다시 진화적 큰 틀에서 이해하며 해석해 내는 이 작업이 더없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구도차처럼, 탐험가처럼 인류의 근원을 찾아가는 그의 즐거운 연구- 첨단과 내일만을 바라보던 우리에게 작은 울림을 던지는 그의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할 근원의 비밀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