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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 기초과학의 연구성과를 실용화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중개연구 #114 벨기에 루벤 유혜령 박사
#중개연구#실용화#여성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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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30
기초과학의 연구성과를 실용화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중개연구
벨기에 루벤 유혜령 박사(Ep.2)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란 기초과학에서의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임상 단계를 거쳐 실제적인 응용이 될 때까지 각 단계의 리스크 등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개발 가능성을 가늠하는 연구다. KU루벤의 레가의학연구소에서 중개연구를 수행하는 유혜령 박사, 유혜령 박사는 자신이 하는 중개연구가 기초과학에서의 성과가 사라지지 않고, 실용화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KU루벤의 레가의학연구소
레가 연구소 전경 및 TPVC 연구실 로고(본인 제공)
유혜령 박사가 일하는 레가의학연구소(Rega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는 벨기에 KU 루벤(루벤대학교) 내에 있는 세계적인 감염병 연구 기관으로 바이러스학, 미생물학, 면역학, 약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염병의 기초 및 응용 연구를 수행한다. 특히. HIV, COVID-19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유명하다.
그리고 루벤대학교의 기술이전 부서인 Leuven Research & Development (LRD)와 협력해 연구 결과를 산업에 연결하는 중개연구가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서,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유혜령 박사가 속해있는 TPVC (Translational Platform for Virus, Vaccine & Cancer Research) 연구실은 바이러스와 암 연구 분야에서의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환자를 돕는 데 적용될 수 있도록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유박사는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서 중개연구를 수행하며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이러스 학자에서 중개 연구자로
유혜령 박사는 처음 바이러스에 입문할 때, 구체적으로 질병/의학 쪽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바이러스 자체만도 연구할 것이 엄청난 광활한 물질의 세계이고 분자 생물학 쪽의 지식들이 바이러스를 연구를 하면서 발견이 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전체를 놓고 보면 사람과 동물의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들도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아주 간단한 생명체, 혹은 생명체 중간 단계에 있는 이 물질이 적합한 숙주를 찾기만 하면 엄청나게 변화한다는 점에서 정용석 교수님께서는 ‘바이러스가 마치 씨앗 같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죠. 씨앗도 단독적으로는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지만 적합한 토양에 심어주기만 하면 싹이 트고 식물을 만들고 열매를 맺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지요. 이처럼 바이러스 역시 숙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능성만 가지고 있지만, 적정한 숙주 세포를 찾으면 스스로 자손을 만들고 또 퍼뜨리잖아요. 감염과 질병도 이 과정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바이러스 연구에 꽂혀 있던 유혜령 박사는 네덜란드를 거쳐 벨기에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개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개 연구자는 연구자와 기업 사이에서 기초 학문과 임상 시험을 연계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뜻밖에도 뉴스에 보도되는 수많은 기초과학 연구 결과들 중에 실용화되는 성과로까지 이어지는 연구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이를 실제에 응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연구만도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
“임상까지 가기 전에는 무수한 실험을 통과해야 되고, 동물 모델에서도 검증이 필요하지요. 서류 작업도 많고 검증과 응용의 단계가 매우 복잡해서, 학교나 연구실에서 좋은 발견을 했다고 일반 기업에서 바로 투자를 하지 못해요. 막대한 투자를 하고 나서 전임상, 임상 단계 등을 거치며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거든요. 저희 중개 연구자들은 기초과학 연구 성과의 임상 가성, 실용화 가능성을 전문적으로 검증하고 연구합니다. 수많은 연구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어 갈고 닦는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실험실 안에서의 발견이 실제적인 결실로 맺어지도록 원석을 고르는 작업
예를 들어, 백신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는 개발 단계에서 실험실 수준으로 소량만 개발을 하게 된다. 연구 결과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이 시약을 실제로 사람들이 다 쓸 수는 제품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개발하는 데는 또 다른 새로운 공정이 필요하다. 제약회사는 연구실에서1리터 수준으로 개발하던 시약을 1톤, 2톤 수준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 실용화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투자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데, 실용화를 검증하는 과정 자체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이 과정에서 제품화가 무산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발생할 수 있다. 이 중요한 고민의 시간, 중개연구자들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
“기초과학과 산업화, 그 중간 단계 역할을 저희가 수행하면서 양쪽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이 약품에 대해 우리가 이만큼 연구한 결과, 기업에서 조금만 더 투자하면 이 더 많은 환자들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내는 것이 저희 역할이에요.”
중개연구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중요성이 부각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유혜령 박사가 생각하는 중개 연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저도 이곳에 오기 전에는 기초 과학만 쭉 해왔던지라,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위트레흐트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저를 이곳으로 스카우트했는데, 기초 과학과 산업계 가운데 중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연구의 특징은 저희가 주체적으로 연구 주제를 시작한다기보다, 기초과학 쪽에서 먼저 발견이 이루어지면, 그 발견을 바탕으로 개발을 시켜나간다는 점이에요. 기존에 해왔던 연구와는 너무 달라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러면 내 연구가 맞나’하는 의구심에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기초 과학을 계속할 때도, 과연 이 연구가 사람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 연구가 정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더 가까이 느끼면 제가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는 결심을 하고 이 분야 연구를 시작했는데, 저에겐 매우 잘 맞았습니다.”
기초 과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직접 기업들과 실용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제품화를 앞당길 수 있는 중개연구 플랫폼은 바이오메디컬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팬데믹 사태, COVID-19 항바이러스제 긴급 개발에 나서다
유혜령 박사가 참여한 COVID-19 프로젝트 로고(본인 제공)
유럽 전체가 락다운(Lockdown이동제한)에 걸릴 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했던 코로나 팬데믹 사태, 백신 연구와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 분야 연구가 긴박하게 진행되는 순간, 유혜령 박사도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가장 먼저 실험실로 불려 나갔다. 유럽 각 대학과 연구 기관들, 글로벌제약회사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하여 각 팀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급박한 다학제 연구가 진행되는 와중에, 유혜령 박사는 항바이러스제 개발 연구를 담당하며 프로젝트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가 중개연구의 필요성을 느낀 시기이기도 했다. COVID-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높아 모든 연구실에서 직접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유 박사는 바이러스의 왕관 모양 표면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을 가진 슈도바이러스(Pseudovirus)를 활용하여 환자 샘플에서 중화항체를 확인하는 검사와 수많은 후보 물질 중 바이러스 감염 초기 단계를 차단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의 효능 평가를 수행했다. 더불어, 바이러스 복제에 필수적인 메인 프로티에이즈(Main protease)를 억제하는 물질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법도 개발했다.
학문과 학문 사이, 발견과 실용화 사이 다리를 놓다
네덜란드 뉴스 화면에 나온 유혜령 박사의 이름이 적힌 실험 플레이트(본인 제공)
유혜령 박사는 기초과학의 즐거움, 연구와 탐구 자체도 즐거웠지만, 자신은 이 발견이 실제로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실용화되고, 사람들을 직접 도울 수 있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팬데믹 연구를 하며 기초과학 연구 결과가 실제로 적용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깨달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중개연구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고, 자신에게도 더 잘 맞는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유혜령 박사는 앞으로도 중개연구를 통해 향후 감염병 대응이나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초연구의 결과가 실용화까지 완성되고,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 그의 연구와 노력을 통해, 인류는 더 많은 ‘연구실 안의 보석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바이오메디컬은 가장 각광받는 산업 분야입니다. 그중에서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신약 개발을 위한 치열한 과정에서 기초과학과 산업을 잇고, 실용화를 위한 고속도로를 만드는 중개연구와 중개 연구자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융합과 협력, 그리고 효율과 속도의 가치가 중요한 현대 사회, 중개 연구자는 기초과학의 보석을 골라내는 세공사이자, 그 자체로 바이오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