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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 DNA로 면역을 설계하다 #111 오사카 대학 박소영 교수
#DNA#면역#여성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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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19
DNA로 면역을 설계하다:
인공 핵산 기술이 여는 생명공학의 미래
(DNA 설계로 새롭게 여는 면역과 생명공학의 미래)
오사카대학교 면역학 프론티어 연구센터
박소영 교수 (Ep.2)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의 쉬디드잇(She Did It)은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과학기술인
롤모델 발굴 프로젝트입니다.
2025년 쉬디드잇 시즌 6는
‘글로벌’을 테마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재외한인 여성과학기술인을 조명합니다.
과학기술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여성과학기술인의 삶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써 내려간 이야기가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되도록
예비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영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DNA는 오랫동안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수동적인 역할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기능이 확장되면서, 스스로 ‘작동하는 분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DNA에 금속 이온이나 아미노산을 결합시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연구를 이끄는 박소영 교수가 있다. 예를 들어 박 교수는, 효소를 모방하여 정교한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인공 촉매 ‘DNA 메탈로자임’을 개발했다. 또한 DNA 구조에 아미노산을 결합해 단백질처럼 작용하는 ‘하이브리드 분자(ANH)’를 만들어 생체 분자 간의 반응성을 크게 높혔다.
박 교수의 연구는 단순한 분자 합성을 넘어서, 생체 환경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며 정밀한 치료와 진단이 가능하게 한다. DNA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그의 연구는 생명과학은 물론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인공 핵산이 주목받는 이유: 정보 분자에서 기능 분자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DNA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기록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생명 반응을 직접 설계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능성 분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DNA의 새로운 기능이 주목받으며 유기화학, 생화학, 나노기술 등이 결합된 인공 핵산 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 핵산(artificial nucleic acid)’은 가공하지 않은 원 상태 그대로의 DNA나 RNA가 아닌,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기능을 부여해 만든 인공 유전물질을 뜻한다. 박 교수 연구팀은 인공 핵산을 적극적으로 창조하고 활용해, DNA 염기 서열 위에 금속 이온이나 아미노산을 정밀하게 결합시켜 촉매, 센서, 치료제 등으로 활용 가능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촉매의 게임체인저, DNA 메탈로자임
DNA 메탈로자임 연구 과정에 대한 이미지(본인 제공)
박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DNA 메탈로자임’은 DNA에 금속 이온을 결합시켜 만든 인공 촉매*다. 기존에는 단백질 효소가 촉매의 역할을 해왔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생체 외 환경에서 불안정해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DNA 메탈로자임은 단순한 DNA의 염기 서열 위에 금속 이온을 정밀하게 결합해, 단백질 없이도 정확한 화학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재사용이 가능하고 단백질보다 단순한 구조로 생산과 사용이 용이하다. 또한 생체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해 실용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갖춘 촉매로 주목받고 있다.
*촉매: 특정 화학 반응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어나도록 돕는 분자
박 교수 연구팀은 DNA 메탈로자임 기술을 다양한 생체 반응에 응용하기 위해 금속 이온의 종류, 결합 위치, 반응 조건 등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설계 기술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DNA를 일종의 '화학 공구 상자'처럼 활용하는 접근은 기존 생명공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정보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갖춘 하이브리드 분자, ANH
ANH 분자 설계 및 응용 연구 과정에 대한 이미지(본인 제공)
박 교수 연구팀의 또 다른 핵심 기술인 ‘ANH(아미노산-핵산 하이브리드)’는 아미노산과 DNA의 특성을 결합한 분자다. DNA는 설계와 정보 전달에 강점이 있지만 기능이 제한적이고, 아미노산은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나 정밀한 정보 제어에는 한계가 있다. ANH는 두 분자의 장점을 결합해, 정보 전달력과 기능성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분자 플랫폼이다.
ANH는 DNA 골격에 아미노산을 선택적으로 결합해 생체 내 반응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물질을 전달하는 등 기능을 효과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기존의 PNA(펩타이드 핵산)나 단순 접합체에 비해 생체 적합성과 구조적 유연성이 뛰어나, 향후 진단, 치료,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DNA로 면역을 설계한다는 것: 정밀한 제어에서 새로운 치료로
(좌) S. Park et al. ACS Sens. 2023, 923. (우) S. Park et al. Org. Biomol. Chem. 2025, 3473.
‘DNA로 면역을 설계한다’는 말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는 DNA를 활용해 면역 단백질의 반응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면역 단백질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DNA/RNA 조각을 감지하면, 즉각적으로 사이토카인이라는 신호 물질을 분비해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인공 핵산 기술은 이러한 면역 단백질과의 결합을 정교하게 설계해 면역 반응을 강화하거나 억제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면역 항암제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효과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인공 핵산 기반 기술은 환자 맞춤형 면역 조절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DNA와 면역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조절함으로써, 과도한 염증 반응을 줄이거나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인식하도록 면역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단 측면에서도 이 기술은 강력한 도구가 된다. DNA가 바이러스나 암 단백질에 결합할 때 신호를 발생시키도록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형광 기반 분석 기술 (FRET, Spectral shift assay) 을 활용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즉 DNA를 정보를 ‘읽는 도구’에서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도구’로 바꿔주는 기술이 바로 인공 핵산인 셈이다. 이 기술은 환경 친화적 촉매, 바이오센서, 정밀 진단 장비, 스마트 바이오소재, 나노장치 등으로도 확장 가능해 산업적 응용 가치도 매우 높다. 실제로 DNA 기반 나노로봇, 항암 전달체, 바이오센서 개발은 이미 연구를 넘어 상용화 가능성까지 검토되고 있다. 생체 내 반응 시스템을 분자 수준에서 설계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정밀의학과 바이오 전자공학의 접점을 형성하며 융합 연구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설계 기술에 강한 연구자, 융합 인재가 미래를 연다
설계 기반의 기술이 핵심인 분야에서는 단일 전공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DNA의 분자 구조를 설계하려면 유기화학과 생화학이, 면역 단백질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려면 면역학과 구조생물학이, 신호 전달 분석을 위해선 생명정보학이 필요하며, 나노디바이스 구현에는 재료과학과 공학적 사고가 요구된다. 이처럼 다양한 전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가능한 분야인 만큼, 융합형 인재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박 교수는 이러한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유기화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면역학과 핵산화학을 새롭게 공부하며, 세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융합 연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학제 간 도전과 경험이 현재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그는 “이 분야는 단순히 새로운 분자를 합성하는 것을 넘어서, 생체 내에서 어떻게 작동할 지 설계하고 검증하는 통합적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박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기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며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 중이다.
DNA는 이제 생명의 설계 언어로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의 매개체를 넘어, 생명 반응을 제어하고 설계하는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 중인 인공 핵산 기술은 과학과 커리어가 만나는 새로운 경계를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