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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휴머노이드, 가능성에서 현실로
#휴머노이드#휴보#파이봇#촉각피드백시스템#테슬라#첨단로봇규제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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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2-06
[기획] 휴머노이드, 가능성에서 현실로
강제 노동(robota)하는 기계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협력자가 되기까지

▲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로봇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올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Pxhere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인 1929년 강제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이름을 딴 로봇(robot)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시작된 이 단어는 현재 우리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단어가 됐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싼 노동력’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에는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싼 노동력: 로섬의 로봇’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로봇이라는 인조인간을 만들어 노동이나 전쟁 등 궂은일을 떠맡기는 미래를 그렸다. 노동다운 노동을 하는 로봇은 한참 뒤인 1961년에 등장했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Unimate)’가 설치된 게 첫 사례다. 유니메이트는 거대한 팔 모양을 한 단순한 로봇이다. 무거운 부품을 나르거나, 용접을 하는 등 인간 노동자가 하기 힘들고 위험한 일을 대신했다.
사람처럼 걷는 최초의 2족 보행 로봇은 2000년 일본 혼다가 공개한 ‘아시모’다. 아시모는 키 130cm에 무게 50kg로 시속 1.6km로 걸었다. 나중에는 사람이 걷는 속도의 절반 정도까지 빨라졌다. 아시모 이전에 개발된 휴머노이드는 중심을 잡는 거대한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일본은 20년간 비밀리에 아시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 최초의 2족 보행 로봇 ‘아시모’. ⓒFlickr
이후 우리나라도 휴머노이드 연구에 착수했고, 2004년 아시모와 견줄 수 있는 성능을 갖춘 ‘휴보’를 개발했다. 1세대 로봇공학자인 오준호 KAIST 교수가 2~3명의 연구자와 함께 3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이룬 쾌거였다.
최초의 휴보보다 키카 크고 성능이 강화된 ‘DRC-휴보’는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하는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2015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DRC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계기로 탄생한 대회다. 방사능으로 가득 찬 사고 원전에 누군가 들어가서 수습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사람의 경우 피폭을 피할 방법이 없다. 사람 대신 보낼 최고의 로봇을 뽑기 위해 DRC는 가상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에 들어가 복구 작업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능력을 겨룬다.
│왜 사람을 닮아야 하나
로봇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데, 왜 휴머노이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걸까. 세상이 사람의 눈높이와 신체 구조에 최적화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고, 소화전을 열어 화재를 진압하는 것까지 모두 사람 몸 구조와 행동 패턴에 맞춰져 있다. 즉, 로봇이 사람을 모방할 수 있다면 로봇을 위해 무언가를 바꾸지 않고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동일하게 하도록 할 수 있다. 공장 전체를 로봇에 맞춰 뜯어 고치는 것보다는 두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 국내연구진이 개발한 최초의 휴머노이드 파일럿 ‘파이봇’ ⓒKAIST
사람의 업무를 대신할 휴머노이드 개발 성과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7월 심현철 KAIST 교수 연구팀은 최초의 휴머노이드 파일럿 ‘파이봇(Pibot)’을 개발했다. 파이봇은 언어로 작성된 조종 매뉴얼을 읽고 이해하는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을 접목한 로봇이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기 때문에 항공기를 개조하지 않고도 조종석에 착석해, 조종속의 다양한 장치들을 조작해 비행할 수 있다. 기존 항공기의 자동비행장치(오토파일럿)나 무인 비행만 가능한 무인항공기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 조종사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파이봇은 전 세계 항공차트(Jeppson Chart)를 전부 기억하여 실수 없는 조종이 가능하며, 항공기의 비행 상태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안전한 경로를 계산할 수 있어 인간 조종사보다 훨씬 빠르게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진동이 심한 항공기 내부에서도 정확한 로봇팔 및 손 제어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수중 탐사 휴머노이드 ‘오션원케이’ ⓒStanford University
사람 대신 심해를 탐사할 수 있는 로봇도 개발됐다. 일례로,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오션원케이(OceanOneK)’는 수심 1km까지 잠수한다. 수압을 잘 견디는 소재로 만들어 물속 깊은 곳도 탐사할 수 있도록 했다. 몸에 부착된 3D 카메라를 이용해 지상에 있는 사람이 물체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촉각 피드백 시스템’을 갖춰 물 밖에서 오션원케이를 조종하는 사람은 로봇이 만지는 물체의 윤곽이나 물의 움직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인간 잠수부가 위험이나 엄청난 수중 압력 없이 직접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사마 카티브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오션원케이가 수심 507m에 가라앉은 배 ‘크리스피호’를 만졌을 때 내가 물속에서 직접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며 “로봇을 통해 바닷속 깊은 곳의 환경을 사람이 느낄 수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션원케이는 우주로도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유럽우주국(ESA)이 오션원케이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촉각 시스템을 우주에서 활용하면 행성 등의 표면을 사람이 간접 경험하며 우주 탐사를 진행할 수 있다.
▲ 테슬라가 개발 중인 판매용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Tesla
휴머노이드가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청소기처럼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올 시점은 머지 않아 보인다. 테슬라는 2022년 ‘테슬라 AI데이’를 개최하며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선보였다. 옵티머스 초기 모델은 상자를 들어 옮기거나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할 기계를 판매할 목적으로 옵티머스를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휴머노이드는 특정 장소에서 한정적인 일만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면, 옵티머스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놓겠다는 게 목표다. 키 172cm, 무게 70여kg으로 신체 조건이 성인 남성과 유사하다. 무릎이나 손가락 관절도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해 만들어졌다. 테슬라는 이르면 내년 이 로봇을 대당 2만 달러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 발표
▲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 기본 방향 ⓒ산업부
휴머노이드 등 첨단로봇은 산업 밸류체인 전반에 접목되어 생산성 향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첨단로봇이 제조 및 서비스 전 영역에서 확산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모빌리티 ▲세이프티 ▲협업·보조 ▲인프라 등 4대 영역을 중심으로 51개 과제 규제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가령, 로봇 모빌리티 확대를 위해 기존에는 식당 등 실내 단거리 배송이 가능했던 로봇의 이동을 보행자 통로, 도시공원, 국가 정원 등의 통행을 허용하는 식이다.
이에 따른 조치로 지난 11월 17일 ‘개정 지능형로봇법’이 시행됐다. 질량 500kg 이하, 시속 15km 이하의 운행 안전 인증을 받은 실외 이동로봇에 보행자의 지위를 부여해 보도 통행을 허용한 것이다. 산업부는 “실외이동로봇을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연내 ‘첨단 로봇산업 비전과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며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에 따른 규제개선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 : 권예슬 과학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