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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개발사례

롤모델

[She Did It] #129 유명희 명예 연구원

조회수63 작성일2025.12.17

<She Did It>

세계적인 분자생물학자, 그리고 과학기술 정책가

유명희 명예 연구원(Ep.1)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의 쉬디드잇(She Did It)은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과학기술인 

롤모델 발굴 프로젝트입니다.

2025년 쉬디드잇 시즌 6는

‘글로벌’을 테마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재외한인 여성과학기술인과 국내 여성과학기술인을 조명합니다.

과학기술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여성과학기술인의 삶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써 내려간 이야기가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되도록

예비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영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명예 연구원.

이는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최고 전문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존경과 예우의 칭호이다.

유명희 박사는 30년 넘게 단백질의 구조-기능에 대해 연구하며

특히 단백질 접힘 과정(folding)의 비밀을 밝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등

단백질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유명희 박사는 ‘프로테오믹스 이용기술 개발사업단’의 사업단장으로 프로테오믹스 기술의 국가적 인프라를 구축하였고 2010년 대한민국 대통령실의 미래전략기획관으로 임명되어 과학기술 정책 입안에도 힘썼다.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서울시 문화상,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포함하여 수많은 국내외 상을 수상하였으며, 유네스코가 선정한 60년 역사상 60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Q.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아주 많았어요. 특히 집 주변의 풀, 나무, 숲 등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자연 현상, 생명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학교 과학 수업과 특히 과학 실험 시간이 늘 기다려졌죠. 단백질, 세포 등의 개념을 몰랐지만, ‘살아 있는 것의 원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생물보다는 국어를 더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Q.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르셨습니다. 아직 생명공학이 낯설던 시기였죠.

 

맞아요.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생명공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서울대학교 자연대에서는 기초과학(미생물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민주화를 위한 학생 투쟁으로 걸핏하면 휴교령이 내려져 강의실에 앉아 있는 날이 별로 없었어요. 졸업은 했지만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로 유학을 갔는데, UC버클리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었고, 저는 이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분석’이라는 주제에 빠져들었어요. 새로운 지식들을 제 머리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Q. MIT에서의 박사후 연구원 시절은 어땠나요?


 

하루하루가 정말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구실마다 새로운 발견이 매일 나오던 때였거든요. 하루에도 몇 번씩 논문이 발표되고, 기술이 바뀌는 환경에서 ‘내가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시험하던 시절이었어요. 특히 버클리와 MIT에서 훈련받은 분야(discipline)가 달랐는데, 버클리에서 화학자 지도교수님에게서 생화학의 기초부터 단백질 연구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MIT에서는 유전학을 전공한 교수님의 지도하에 유전학이라는 강력한 툴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MIT에서는 단백질의 변형과 상호작용을 다루는 실험을 많이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Q.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초창기부터 20년 넘게 연구하신 한국 생명공학 연구의 개척 세대이십니다.

 

그 당시는 장비도 인력도 부족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게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죠. 하나의 실험 장비를 여러 팀이 나눠 쓰면서도 밤을 새워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를 일일이 수동으로 분석했어요. 그때의 연구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집념’이 있었죠. 그런 환경 속에서 한국형 단백질 연구의 기반을 하나씩 다져나갔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단백질 폴딩(접힘) 연구를 꾸준히 하면서 혈장단백질이 변이(유전적 변이)에 의해 폴딩 속도가 늦어지면서 응집이 생긴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밝혀냈어요. 단백질이 변이에 의해 간세포 내에서 중합되어 인체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고, 이러한 업적들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1998년에 유네스코에서 수여하는 제1회 L'OREAL-UNESCO 세계여성과학 자상(당시 헬레나루빈스타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영광이지만, 한국생명과학의 위상을 세우는 데에 공헌했다는 것이 더욱 기뻤습니다.

 

 

Q. 2000년대 초 ‘프로테오믹스 이용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끌며 국가 단백질 연구를 총괄하셨습니다.


 

‘게놈에서 프로테옴으로’라는 발상의 전환이 인상적이에요.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단백질체 연구가 시작될 무렵이었어요. 우리나라도 단백질체 기술에 대한 국가 인프라를 확립하기 위해 30여 명의 박사와 교수들로 구성된 프론티어연구 개발사업단을 만들죠. 정부가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는 굉장히 거대한 국가 R&D 사업인데 큰 부담이 되었지만 사명감으로 단장을 맡았어요. 

 

그때 연구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은 ‘함께 하는 연구’에요. 단백질 연구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어요. 화학, 생물학, 물리학, 데이터 과학이 모두 모여야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연구원들에게 “서로의 언어를 배워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연구실을 나와 연구개발 관리에도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Q. ‘게놈에서 프로테옴으로’라는 발상의 전환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게놈(Genome)은 생명체의 설계도라면, 프로테옴(Proteome)은 그 설계도를 실행하는 현장입니다.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비로소 생명체가 기능을 발휘하죠. 그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제가 말하는 “단백질의 언어”예요. 그래서 유전자 연구를 넘어 단백질 연구로 확장하는 게 필연적이라고 느꼈습니다.

 

 

Q. 연구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단백질을 통한 질병 원인 단서를 발견한 순간이었죠. 암이나 알츠하이머처럼 복잡한 질환일수록 하나의 단백질이 여러 신호 경로에서 중추 역할을 하곤 해요.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정말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이 단백질이 바로 그 원인이었구나’ 하고 연결될 때의 전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Q. 대통령실의 미래전략기획관으로 정부에서 일하신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2010년7월부터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면서 약 2년 반 동안 국가 R&D를 포함한 정부의 미래전략에 관한 총괄 업무를 담당했어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기초과학 지원과 바이오산업의 규제 개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리자로서 역량을 키우고 법률안에 대해 전문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MBA(경영학석사)와 LLM(법학석사)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제3차 나로호 시험 발사였어요. 이전 1차, 2차 시험 발사에서 실패 사례가 있었기에 성공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죠. 뜨거운 국민적 관심만큼 정부에서는 자칫 실패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고 일각에서는 시험 발사를 미루자는 의견까지 있었지만, 저는 나로우주센터의 연구원들이 고생하며 연구한 것, 그들의 치열한 노력을 알기에 시험 발사를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게 초조한 상황에서, 회의 때 대통령께서 제게 이번 발사가 성공할지를 물으셨는데, 저는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회의 참가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준비하고도 성공하지 못할 수가 있다고요?”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이것은 상용 발사가 아니라 시험 발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이해하시더군요. 나로호 발사는 과학 실험과 같은 것이고, 과학에서 실험이란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추진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로호 3차 발사는 성공했습니다. 

 

 

Q. 여성 과학자로서의 여정은 어땠나요?


 

처음엔 쉽지 않았죠. 연구실에서도 ‘여성 연구자’보다 ‘남성 과학자’가 훨씬 많았고, 여성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성과’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요. 연구는 성별과 상관없이 끈기와 열정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걸 꾸준히 보여주면 주변이 인정해 줍니다.

 

 

Q.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과학은 실패 속에서 자라납니다. 실험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 실패 안에는 항상 새로운 질문이 숨어 있어요. 그 질문이 바로 다음 연구의 씨앗이 되죠. 그리고 자신을 믿는 힘,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결국 결과를 바꿉니다.

 

마음이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모를 때는 찾을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도움을 받을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고 인생이 바빠지게 되고 즐거워지는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주변에서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단백질 연구를 더 정밀하게, 더 통합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지금은 질량분석 기술 덕분에 수천 개 단백질을 한 번에 분석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단백질의 시간적 변화까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해지면 우리는 생명현상을 ‘정지된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처럼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 길을 후배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