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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개발사례

롤모델

[She Did It] #122 이화여자대학교 이향숙 총장

조회수45 작성일2025.10.28

<SHE DID IT > 

순수하고 정직한 수학의 세계에 매료된 행복한 탐험가 

이화여자대학교 이향숙 총장 (Ep.1)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의 쉬디드잇(She Did It)은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과학기술인 

롤모델 발굴 프로젝트입니다.

2025년 쉬디드잇 시즌 6는

‘글로벌’을 테마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재외한인 여성과학기술인을 조명합니다.

과학기술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여성과학기술인의 삶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써 내려간 이야기가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되도록

예비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영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139년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장을 연 한 명의 수학자.

이향숙 총장은 수학이 지닌 ‘질서와 조화의 언어’를 대학의 리더십으로 확장시키며, 

이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양자 내성 암호 연구를 통해 쌓은 통찰력으로, 

복잡한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증명한 그.

지식과 인간미가 만나는 지점에서, 수학처럼 정직한 리더십의 해답을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2025년 2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과학기술계열 총장이 취임했다. 수학의 암호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한 대표적인 연구자로서 1995년부터 이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한 이향숙 총장이다. 1986년 이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 총장은 미국 노스웨스턴(Northwestern) 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공개키 암호에서 겹선형 함수 기반 암호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며 특히 양자 내성 암호(Post Quantum Cryptography)인 격자(Lattice) 기반 암호에 대한 연구 및 학술활동을 수행하였고 50여 편 이상의 논문을 국제 저널 및 학술대회 논문집(Conference Proceedings)에 발표해 왔다.

 

 

Q. 이화여대 139년 역사상 최초의 과학기술계열 총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더불어 모교의 총장이 되신 감회도 남다르실 것 같은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제 학문의 출발점이자 인생의 방향을 정립해 준 모교입니다. 그런 이화의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며,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139년 역사 속에서 최초의 과학기술계 출신으로서 총장에 취임했다는 점은 제 개인에게도 특별한 의미이지만, 이화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입니다. 이화여대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혁신을 이끄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여깁니다. 제가 취임 시 제시한 ‘포용적 혁신으로 대전환의 시대를 선도하는 이화’는 이러한 사명의 표명입니다. 

 

이화는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교육으로 여성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넓혀온 대학입니다. 저는 연구자와 행정가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와 혁신의 물결 속에서도 이화가 사람 중심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에 기여하는 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화의 전통 위에 새로운 도전을 더하며, 후속 세대 여성들에게 보다 확장된 가능성의 지도를 펼쳐주는 것이 제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Q 과학기술계열 전공이 리더십에 어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한 학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가장 큰 강점은 ‘구조화된 사고’와 ‘객관적 판단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감정이 아니라 원리에 따라 판단하며, 끝까지 해결책을 찾아가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습니다. 

 

특히 대학이라는 복잡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수학자로서의 시선은 명확한 원칙과 더불어 유연한 조화를 고민하는 데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Q 수학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수학을 좋아하시게 된 계기와 수학을 전공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수학자로서 30여 년을 살아온 저는 수학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일찍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물을 관찰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규칙과 패턴을 발견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기쁨보다, 한 문제를 붙잡고 끝까지 고민하며 제 논리로 풀어냈을 때의 몰입과 성취의 경험이 저를 자연스럽게 수학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Q 수학을 연구하시면서 느낀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수학은 단순한 계산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정교한 언어라는 점에서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수학의 가장 큰 매력은 보이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꿰뚫는 사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은 정직하고 순수한 수학의 세상으로 이어집니다.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더라도 그에 도달하는 길은 다양하며, 어떤 해법은 더욱 우아하고 깊이 있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수학은 논리, 창의, 그리고 끈기를 요구하는, 매우 인간적인 학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Q 수학자로서 수학자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수학자는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수학으로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철학, 음악, 건축, 교통 등을 비롯해 영화, 컴퓨터 애니메이션, IT 기술의 주요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그 핵심은 수학입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와 조화 속에 숫자의 규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은 수다”라고 했지요. 세상만물의 본질은 수의 질서, 패턴입니다. 

 

 

Q 모교 이화여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에서 공부하던 시절, 교수님들께서 강조하신 ‘생각하는 힘’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은 학문을 넘어 제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화의 공동체적 분위기와 따뜻한 배려 속에서 여성으로서 수학을 전공하고 학문적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화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학창 시절이 아니라 제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해 나가는 출발점이었습니다.

 

 

Q 이후 세계적인 명문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지요?

 

모교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미국 시카고 근방의 노스웨스턴대학에서 4년 6개월 간 유학했습니다. 사색하기 좋았던 고요한 캠퍼스는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요.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전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참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만 통과하면 논문이다!’라고 생각하며 매진했는데 막상 시험을 통과하고 논문을 쓰다 보니 ‘시험 공부하던 때가 행복하던 때였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죠. 제게 논문 쓰기는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는 치열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류를 발견해 좌절하기도 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성취감을 맞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업 다운의 파도를 타며 수학에 푹 빠졌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미국 친구들과 사귀면서 다른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며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쌓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 문화에서 살아왔지만 그 친구들을 통해 사람은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 같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휴머니즘, 인간적 감성 등 본질적인 보편성이 합을 이룰 때 우정이 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Q 수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특히 총장님께서는 암호학의 권위자이신데요, 암호학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수학은 단순히 숫자와 계산의 학문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원리와 구조를 찾아내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입니다. 그 분야 또한 매우 다양해서 순수수학처럼 논리와 증명의 세계를 탐구하는 영역부터 데이터 과학이나 금융 수학, 그리고 암호학처럼 현실과 긴밀히 맞닿아 있는 응용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제가 전공한 암호학은 디지털 시대의 보안과 신뢰를 수학적으로 설계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때, 그 안전한 정보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암호 기술입니다. 그 이면에는 정수론, 대수학, 복잡도 이론 등 고도의 수학적 토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암호학은 오늘날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서부터 국가 안보, 국제 경제 질서까지, 사회 전반의 신뢰를 지탱하는 중요한 학문입니다. 이처럼 암호학은 수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정보 보호와 신뢰 구축이라는 현실적 과제에 직접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순수 수학의 논리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저를 끝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수학에는 ‘수철학’처럼 수학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이는 수학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 그 자체이자 철학적 성찰의 대상임을 일깨워 줍니다. 수학의 진정한 매력은, 그 자체로는 추상적일 수 있지만 인간의 삶과 문명, 기술 발전의 모든 흐름에 스며있다는 데 있습니다. 수학은 가장 보편적이고도 근본적인 지식의 언어이며, 어느 분야에 있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든든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Q 수학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오랫동안 공개키 암호에서 겹선형 함수 기반 암호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양자 내성 암호(Post Quantum Cryptography)인 격자(Lattice) 기반 암호에 대한 연구 및 학술활동을 했습니다. 

 

수학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오랜 시간 고민하던 문제의 실마리가 열릴 때입니다. 아주 작은 진전이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흔적이 담겨 있기에, 그 한 걸음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제 연구가 암호학을 통해 사회의 보안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국가적 차원의 정보 보호 정책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학문을 넘어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보람도 느껴왔습니다. 

 

 

Q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음 세대, 중고등학교의 여학생들에게 특별히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한다면, 그 마음을 끝까지 믿으며 밀고 나가길 바랍니다. 때로는 ‘여학생이 이과에 가는 것이 맞을까?’라는 시선이나 스스로의 불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의 시선과 감각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도, 실험이 실패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우는 인내, 사고력,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힘은 여러분이 어떤 길을 가든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수학자로 살아오며 ‘끈기’, ‘협업’, ‘통섭적 사고’가 학문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해보는 용기,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용기, 낯선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 하나하나가 결국 여러분만의 길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수학과 과학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탐구하고 변화시켜 나갈 여러분의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Q 연구를 하실 때, 혹은 휴식을 취하실 때 들으시는 음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는 주로 클래식이나 찬송가를 듣습니다. 바흐나 슈베르트의 선율은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정돈해 주는 힘이 있고, 찬송가는 그 자체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음악이어서 저에게는 삶의 리듬을 다시 찾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곡은 쇼팽의 ‘녹턴’입니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어 힘든 순간에도 마음을 차분히 붙잡아주고, 사색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게 합니다. 연구자로서, 또 행정가로서 긴 호흡이 필요한 순간마다 이 곡을 자주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