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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개발사례

롤모델

[She Did It] #115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서은숙 교수

조회수111 작성일2025.07.30

“천체물리학은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즐거운 여정”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서은숙 교수(Ep.1)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의 쉬디드잇(She Did It)은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과학기술인 

롤모델 발굴 프로젝트입니다.

2025년 쉬디드잇 시즌 6는

‘글로벌’을 테마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재외한인 여성과학기술인을 조명합니다.

과학기술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여성과학기술인의 삶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써 내려간 이야기가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되도록

예비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영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이자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종신교수.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우주선(cosmic ray) 연구 프로젝트

(CREAM 및 ISS-CREAM)를 기획, 주도하며 우주 탐사의 지평을 넓히다.

 

 

서은숙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메릴랜드대 박사후과정 연구원을 거쳐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연구교수로, 2004년 8월부터 종신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주선()을 연구하는 그는 1997년, 한국계 과학자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신진 우수연구자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우주선을 측정하기 위해 남극에서 검출기를 띄워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7년에는 검출기를 우주정거장까지 보냈다. 이처럼 탁월한 연구 성과로 2014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WP) 매거진’ 표지 인물로 소개되었는가 하면, 뉴욕타임즈에서도 그의 연구 업적을 자세히 다뤘다.   

 

‘한국인 여성 과학자’로서 미국 물리학계가 주목하는 연구자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물리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드물던 80년대, 일찍부터 과학자로 자신의 진로를 정한 그는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을 설득해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에는 스스로 길을 만들며 걸어왔다. 극한 환경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매번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 여정을 즐겼고 지금도 연구를 천직으로 여긴다. 베일에 싸인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은, 30여 년을 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설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Q. 교수님의 주요 연구 주제인 우주선()이란 무엇인가요?

 

우주를 오가는, SF 영화에 나오는 그런 우주선이 아니고요(웃음). 우주 밖에서 날아오는, 초고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코스믹 레이(cosmic ray)라고 해요.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던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들어오면서 대기 중에 있던 입자들과 충돌해서 쪼개져요.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낮은 입자로 바뀌는데, 과학자들이 이렇게 쪼개진 입자들을 측정해서 원래 우주선의 에너지를 측정하는 연구를 합니다. 

 

 

Q. 교수님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꼽히는 크림(CREAM), 아이스크림(ISS-CREAM)크림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우주선이 원래 어땠는지를 정확히 알려면, 이미 쪼개진 입자들을 가지고 하는 간접 측정보다 대기와 충돌하기 전의 우주선을 검출하는 게 가장 좋겠죠? 그래서 나사(NASA)에서 검출기를 40km 상공까지 띄워 올려서, 거기서 검출한 우주선을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제가 그 프로젝트를 주도했고요. 그게 바로 ‘크림 (CREAM, Cosmic Ray Energetics And Mass의 약자)’ 프로젝트입니다. 나중에 후속 연구를 통해 검출기를 우주정거장까지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의 머리글자를 따 ‘아이스크림(ISS-CREAM)’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우주에서 체류하면서 그만큼 더 강력한 고에너지 입자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죠.

 

 

Q.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크림은 미국, 한국, 프랑스, 멕시코 등 여러 나라 연구자들이 협업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예요. 2004년 12월에 첫 발사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발사 직전까지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계속 생겨서 마음을 많이 졸였어요. 무엇보다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을 한 팀으로 모아 같은 목표를 향해 가도록 이끄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영어에는 이런 상황을 빗댄 ‘허딩 캣츠(herding cats)’라는 표현이 있어요. 독립적인 동물인 고양이를 한데 모아 통솔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뜻이죠(웃음). 

 

 

Q. ‘한국인 여성 과학자’로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NASA에서 연구할 당시 사진(본인 제공)

 

제가 미국 유학 생활을 시작한 게 1986년이에요. 공부만 생각하고 무작정 왔는데, 막상 혼자 도착하니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감사하게도 나사에서 박사학위 논문 연구를 할 기회를 얻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성 연구자에 대한 차별은 미국에도 있었고, 게다가 유학생 신분이었으니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신기하게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좋았어요. 아폴로 달 착륙을 TV에서 봤는데, 그걸 쏘아 올린 나사에서의 연구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잖아요(웃음). 

 

Q. 미국 과학계에도 유리천장이 있나요?

 

미국에서도 여성 연구자를 ‘영 레이디(young lady)’라고 부르는 남성 연구자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의미죠. 나사에서 연구할 때는 저를 새로 부임한 비서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학생 때는 학회에 갔다가 ‘미스터 서’라고 쓰인 명찰을 받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크게 상처받지 않았어요. 남이 뭐라고 하든 ‘나는 과학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연구에만 집중했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나사만 해도 제가 처음에 일할 때는 백인 남성 위주였는데 지금은 여성이나 유색인종을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고, 우주 관련 연구를 하는 여성 연구자도 많아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여성연구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가는 건 쉽지 않아요. 

 

 

Q. 그런 환경에서 크림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지도자가 되는 건 어렵지만, 일단 되고 나면 여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돼요. 작은 의견도 놓치지 않고 듣는 세심함,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포용력 등이 팀을 원활하게 이끌어나가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분쟁이 생겼을 때도 제가 주류가 아니기에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어요. 

 

과학자를 성별로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과학자에게 필요한 건 호기심과 지적 능력입니다. 다만 여성이기에, 혹은 남성이기에 가지는 장단점이 있으니 그걸 잘 파악해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동안 남극에 다섯 번 다녀왔어요. 남극이 여름일 때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보통 12월에 진행해요. 발사하려면 기상 조건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벌룬이 성공적으로 올라갈 때,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저는 그걸 기적이라고 말해요. 살면서 그런 기적의 순간을 경험한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죠.  

 

 

Q. 교육자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고등학교 때 인생 계획을 짰어요. 그때 세운 가장 중요한 목표가 연구였죠. 그리고 마흔 살쯤 되면 교육자가 되려고 했어요. 창조적인 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 이후에는 내가 원한 바를 실현할 수 있게 해 준 사회에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한 환원이 바로 가르치는 일이었고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내는 것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에요. 좋아하는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그걸 가르칠 수 있으니 정말 이상적인 직업이죠(웃음).  

 

 

Q. 교수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새벽 5시쯤 일어나요. 6시에 온라인으로 아침 예배를 드리고, 8시쯤이 되면 한국·유럽 연구자들과 미팅이 있어요. 나라마다 시차가 있어서 그 시간이 제일 적당하더라고요. 낮에는 학교에서 강의와 회의, 논문 준비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밤 8~9시 무렵에 또 화상 회의가 있어요. 이때는 미국 서부에 있는 연구자들과 만나는 시간이에요. 미국은 같은 나라지만 동부와 서부도 시차가 있거든요. 엄청 바빠 보이지만, 남극에서의 실험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 때와 비교하면 한가한 편이에요. 

 

 

Q. 과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과학이 좋아서, 무엇이든 연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 과학자라는 직업은 축복과 같아요. 학문이나 기술은 시간을 들여 배우면 됩니다. 과학자에게 진짜 필요한 자질은 호기심, 열정, 끈기라는 점을 꼭 말해주고 싶어요. 

 

다만 연구자의 길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반대가 많을 거예요. 저도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어요. 이런저런 소리에 흔들릴 때는 내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주변에서 모두 뜯어말리는데도 그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면, 하는 게 맞아요. 어떤 일을 하든 보장된 미래란 없고, 어려움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극복할 힘이 생겨요. ‘천재도,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끈기 있게 전력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