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DID IT 2.0
과학자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멋진 과학기술이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과학동아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한국의 여성과학기술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프로젝트, She Did It 캠페인의 일환으로 10회에 걸쳐 여성 과학자 스무 명의 하루를 들여다봅니다. 7월 8일에는 이보미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선임연구원의 하루를 따라가 봅니다.
06:30 · 이른 아침 화상회의
우주망원경 데이터로 암흑물질 분포를 논의하다
7월 8일 이보미 한국천문연구원 은하진화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의 하루는 램가 차리 미국 UCLA 지구·행성·우주과학과 교수와 카일 피너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과학 및 데이터센터(IPAC) 연구원과의 정기 화상 회의로 시작됐다. 이 연구원은 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고 변해 왔는지 은하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그의 관측 도구는 우주 궤도에 떠 있는 다양한 우주망원경들이다.
“박사후연구원으로 IPAC에서 일하면서, 유럽 우주망원경 유클리드에 관해 연구했어요. 유클리드가 우주로 발사되기 전이었기에 허블 우주망원경 자료를 유클리드가 관측할 데이터처럼 가공해 사용했죠. 이를 바탕으로 유클리드가 관측할 은하들의 형태와 암흑물질 분포를 예측하는 연구를 했죠. 지금도 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관측 제안서를 제출한 것이 채택돼 2024년에 관측이 이루어졌어요. 한 달에 한 번 차리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과 정기 미팅을 통해 JWST 분석 결과에 관해 논의하고 있죠.”
회의에서는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후속 관측 및 연구에 관해서도 논의가 오갔다.
09:30 · 연구원 출근
커피와 함께 밤사이 쌓인 연락을 확인하다
12살, 그리고 31개월의 두 자녀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연구원은 아들과 딸을 각각 학교 및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준 뒤 천문연으로 출근한다. “9시에 연구실에 도착하면 커피를 내린 뒤 컴퓨터를 켜는데 이때가 하루 중에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이에요.” 이 연구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시간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지 짐작게 하는 말이었다.
컴퓨터를 켜면 밤사이 도착한 e메일이 많다. 또한 스피어엑스 팀원들이 쓰는 업무용 메신저에 많은 글이 올라와 있다. “현재 스피어엑스 관측 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어, 자료에 관한 새로운 이슈와 발견 등에 관한 논의가 메신저에서 활발히 오가고 있어요.”
출처 : 연합뉴스TV
스피어엑스는 수억 개의 은하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 영역에서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이다. 2025년 3월 발사됐다. 스피어엑스는 102개의 고유한 적외선 파장 대역을 포착하는데, 이를 통해 천체의 빛을 102가지 색깔로 자세하게 관측할 수 있다. 천문연은 스피어엑스 개발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유일한 국제협력 기관이다. 이 연구원은 수십억 개 은하의 적색이동을 측정하는 파이프라인 개발을 이끌었다.
10:00 · AI와 논문 탐색
먼지에 가려진 은하 찾는 방법을 고민하다
“요즘 스피어엑스 자료에서 먼지에 가려진 은하를 찾을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어요.” 이 연구원이 말했다. 은하에서 나온 빛은 우주 공간의 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적외선 파장대에서는 이런 먼지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먼지에 가려진 은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이때 이 연구원의 동료는 인공지능(AI) 도구인 클로드다.
“클로드에게 제가 가진 자료와 연구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어떤 기준과 알고리즘으로 은하를 찾아볼지 이야기했어요. 클로드가 답을 내놓으면 다시 제가 설명을 보태고 방향을 수정하는 식이죠.”
클로드가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이 연구원은 아카이브(arXiv)에 접속했다. 아카이브는 정식 학술지 심사를 거치기 전의 연구 논문을 무료로 공유하는 온라인 저장소다. 아카이브에는 전 세계 연구자들의 새 논문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매일 천문학 논문을 확인해요. 늘 다르지만 하루에 50~60개 정도의 논문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모든 논문 제목과 초록을 살피며 연구 동향을 확인하고, 관심 있는 주제의 논문은 따로 저장해두죠.”
11:30 · 천문연 요가 동아리
연구와 육아를 버티는 체력을 기르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 연구원은 요가를 하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천문연에는 요가 강사를 초청해 함께 요가를 하는 동아리가 있어요. 평소에 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요가를 하고 있어요.” 이 연구원이 운동을 꾸준히 하려는 이유는 체력 때문이다. 그는 연구와 육아를 함께 이어가려면 버틸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가 강습이 끝난 뒤에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은 점심시간이 길지 않아, 이날의 점심 식사는 집에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13:00 · 파견 간 동료와 화상회의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방법을 논의하다
이른 오후 화상회의가 시작됐다. 화면 너머에는 천문연 소속으로 미국에 파견 중인 양유진 책임연구원이 있었다. 이 연구원은 “별과 은하를 어떻게 구분할지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스피어엑스는 전 하늘을 관측하기 때문에 은하뿐 아니라 우리은하 내에 있는 별도 함께 촬영된다. 그런데 이런 별이 은하로 잘못 분류되면 적색이동 측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별과 은하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하는 방법은 분광 관측이에요. 천체에서 나온 빛을 세밀하게 나눠 방출선이나 흡수선을 보면 천체가 별인지 은하인지 더 정확히 알 수 있죠. 하지만 스피어엑스가 다루는 모든 천체에 대해 이런 분광 관측 자료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때문에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 했죠.”
이 연구원은 천체의 색깔 정보와 형태 정보에 초점을 맞췄다. 여러 파장대에서 보이는 색깔의 조합을 보면 별과 은하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별은 관측 이미지에서 대체로 작고 둥글게 보이지만 은하는 타원은하, 나선은하, 불규칙은하 등으로 나뉘는지라 모양이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존 논문과 여러 관측 자료에서 쓰인 방법을 조합해 현재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기준을 5가지 정도 만들고, 이를 적용하는 방법을 세우고 있어요. 이날 회의에서는 양 연구원에게 이 방법을 보여주고 의견을 들었죠. 양 연구원은 이 분류 결과가 결국 우주론 연구팀에서 사용하는 자료인 만큼, 우주론 팀이 쓰는 은하 샘플의 특징을 더 반영하면 좋겠다고 조언했어요.”
이 연구원은 조언을 바탕으로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방법을 다시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6:00 · 천문연 콜로키움
천문학자의 연구에 관해 귀 기울이는 시간
오후 4시, 이 연구원은 천문연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콜로키움에 참석했다. 콜로키움은 외부 연구자를 초청해 1시간가량 연구 발표를 받는 자리다. 주로 천문학 분야 연구자가 연사로 초청되지만 때로는 AI 연구자나 기기개발 등 공학 연구자들이 초청되기도 한다. 이날 연사는 송현미 충남대 교수였다. 송 교수는 라이먼 알파 방출 은하와 복사전달 모의실험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관해 소개했다.
“콜로키움은 천문학에서 중요한 문화예요. 전 세계 천문 연구기관이나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어요.” 콜로키움이란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학술 행사를 뜻한다. ‘모여서 말하기’나 ‘대화하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우주가 넓은 만큼 천문학 분야는 워낙 다양한 것에 비해 연구자들이 본인이 속한 연구실, 연구기관에서 접할 수 있는 연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콜로키움은 교류가 중요한 천문학에서 연구자와 연구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공간이에요.”
5시 30분 연구실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간 이 연구원은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보통 아이들을 재우면 밤 10시쯤 돼요. 이때부터 1시간 정도는 e메일 확인을 한 번 더 하죠. 지도하는 학생 연구원들의 메일에 답을 한 뒤 11시쯤 잠자리에 들어요.” 별과 먼지, 가스가 모여 우주의 시간을 품고 있는 은하처럼 이 연구원의 하루도 회의와 코드, 논문과 관측 자료로 겹겹이 쌓이며 우주 역사를 읽어내리고 있다.
일러스트: credit 김연정
이보미 연구원 사진: credit 최원준
*일부 AI, 게티 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