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화학부 교수 석차옥입니다. 제 전공은 계산화학(이론화학)으로, 물리 법칙을 바탕으로 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해 왔습니다. 특히 단백질과 같은 생체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고, 지난 20여 년 동안 물리화학과 생물정보학을 융합해 생명현상을 연구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과 치료제를 설계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요.
Q. 과학의 여러 갈래 중에 왜 화학을, 그리고 지금은 신약개발 연구를 하시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물리와 화학, 수학처럼 자연 현상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화학은 물질이 왜 그런 성질을 갖는지, 분자 수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이론화학과 계산화학을 공부하면서 복잡한 화학 현상을 물리 법칙만으로 설명하고 예측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생명현상은 물리화학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단백질과 같은 생체분자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생물정보학과 AI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확장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특정 분야를 정해두고 따라가기보다는, 이해하고 싶은 문제를 따라가다 보니 계산화학을 거쳐 생명과학, 그리고 AI 기반 신약개발 연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교수님이자 회사의 대표이신 게 흥미롭습니다. AI 기반 신약개발 회사를 세우시게 된 경위가 무엇인가요?
A. 연구가 좋아서 교수가 됐고, 오랫동안 생체분자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연구가 실질적인 가치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빨리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큰 전환점은 AI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알파폴드2(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이 개발한 단백질 구조 예측 AI 모델로 2020년 발표됐다. 알파폴드2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데 생물정보학적 접근 뿐 아니라 물리화학적이 접근을 더한 모델이다. 2018년 개발된 알파폴드1이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에서 60점 남짓이었는데 알파폴드2는 90점으로 크게 성능이 향상됐다) 이후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AI가 생명과학과 신약개발에 미칠 영향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기존의 대학 연구실 방식만으로는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AI 기반 신약개발은 한 연구실만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대규모 컴퓨팅 자원과 전문 인력, 그리고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든요. 학교에서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지만, 기업은 필요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실제 신약개발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제자들과 함께 갤럭스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개발해 온 생체분자 구조 예측 기술과 AI 기술을 결합해 신약개발에 활용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서울대 연구실에서 새로운 과학적 아이디어를 만들고, 갤럭스에서는 그것을 실제 신약개발 기술로 발전시키는 두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Q. 갤럭스에서는 AI를 기반으로 어떻게 신약개발을 하고 계신건가요?
A. AI를 활용한 신약개발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AI가 곧바로 약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AI를 활용해 새로운 치료제 후보를 설계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단백질 설계 AI입니다. 단백질 설계 AI는 반대로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암세포만 인식하거나 특정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필요하다면,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단백질을 컴퓨터 안에서 설계하는 것이죠.
특히 저희가 연구하는 드노보(de novo) 단백질 설계는 자연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조금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처음부터 만드는 기술입니다. 기존 신약개발이 이미 존재하는 분자 가운데 좋은 후보를 찾고 개선하는 과정에 가까웠다면, 드노보 단백질 설계는 원하는 기능을 먼저 정하고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분자를 새롭게 창조하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러면 갤럭스에서는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찾는 연구만 하나요?
A. 아닙니다. 갤럭스는 AI를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과 항체를 설계할 뿐만 아니라 이 단백질이 원하는 기능을 실제로 수행하는지 검증하는 연구까지 수행하고 있어요. 때문에 회사는 크게 드라이랩과 웻랩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드라이랩(컴퓨터 시뮬레이션, 수학적 모델링, 데이터 분석, 코딩 등을 통해 연구와 가설을 검증하는 공간)은 AI를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과 항체를 설계하는 곳이에요.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분자 수준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또 어떤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지를 먼저 정의해야 하거든요.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단백질을 AI로 설계하고, 구조를 예측하고, 실제 가능성을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컴퓨터 안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생명체 안에서도 작동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웻랩(화학물질, 생체 시료 등을 사용해 직접 손으로 실험하고 분석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죠. 웻랩에서는 드라이랩에서 설계한 단백질을 실제로 만들고, 예상한 기능이 나타나는지 실험으로 검증합니다. 결국 AI가 설계하고 실험이 검증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저는 이 두 과정이 분리된 일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설계를 하려면 실험을 이해해야 하고, 좋은 실험을 하려면 AI가 무엇을 예측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갤럭스에는 컴퓨터과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자, 생물학자, 약학 연구자, 구조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Q. 여러 전공의 연구자들과 함께 일할 땐 무엇이 중요한가요?
A. 저는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부단장으로 이끌고 있는 서울대 바이오인공지능연구단만 해도 화학, 생명과학, 의학, 약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단과대학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각자 사용하는 언어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과학자는 데이터를 보고 알고리즘을 생각하고, 생물학자는 실험을 떠올리고, 의사는 실제 환자를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려는 상상력이에요. 내가 모르는 분야의 연구자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결국 새로운 연구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AI와 바이오 분야는 어느 한 전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컴퓨터과학자만 있어도 안 되고, 생물학자만 있어도 안 돼요.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연구자는 자기 분야를 깊게 아는 사람인 동시에, 다른 분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Q. 상상이 중요하단 얘기가 흥미로와요. 교수님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신가요?
A. 그런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학생 때부터 수업을 들을 때 두 명의 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명은 교수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지식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계속 상상하는 학생이었어요.
저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 그것을 그냥 외우기보다 제 머릿속 지식 체계 안에 어디에 놓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 개념은 어떤 개념과 연결되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계속 구조화하려고 했죠. 그러다 보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 사이에서도 연결고리가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연구를 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새로운 기술이나 연구 결과를 접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에 알고 있는 화학이나 생물학, AI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과정 자체가 일종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Q. 교수님이 상상하는 AI 신약개발의 미래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지금도 AI는 신약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사실 아직 신약개발의 모든 과정에 AI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AI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단계는 새로운 물질을 찾고 분자를 설계하는 초기 단계예요. 그런데 신약개발 전체 과정에서 보면 이 단계는 매우 앞부분에 해당합니다.
갤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계에서 AI가 약 50%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이 비중이 90% 가까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가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찾는 것을 넘어, 어떤 물질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신약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좋은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도 임상시험 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에요. 생명체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AI가 생체 내에서의 반응이나 성공 가능성까지 더 잘 예측하게 된다면 이런 실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신약개발의 미래는 단순히 연구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더 정확하게 찾고 임상 실패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