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Did It
[She did it] AI가 만드는 소외를 고민하는 연구자 | 김말희 ETRI 책임연구(EP.2)
#김말희연구원#ETRI책임연구원#한국여성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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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27
<SHE DID IT 2.0>
인공지능(AI)부터 보안 시스템, RFID 미들웨어, 공장 에너지 관리 시스템, 제조 탄소 관리, 제조 데이터 플랫폼 연구까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약 25년간 국가와 산업계에 필요한 기반 기술을 연구한 이가 있다. 김말희 ETRI 환경ICT연구실 책임연구원은 AI가 산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며 동시에 AI가 만드는 소외와 공백을 메우는 연구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Q. 연구원님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연구하고 있는 김말희 책임연구원입니다. 대학에서는 전산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연구 분야예요. 지금은 AI와 데이터가 중요해졌지만, 결국 AI도 좋은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연결하고 활용하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 연구는 여전히 중요한 기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석사 졸업 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이동통신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경쟁 중심의 환경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정부출연연구소라는 조직을 알게 됐고, 다양한 기술을 연구하면서도 스스로 연구 방향을 고민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ETRI로 자리를 옮겨 연구하게 됐죠.
ETRI에 온 뒤에는 정보보호, RFID 미들웨어, 센서 네트워크, 에너지 관리, 탄소 관리, 제조 AI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 왔습니다.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을 실제 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죠. 지금은 제조 데이터와 AI를 결합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Q. 어떤 산업 현장의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계신가요?
A. 현재 에너지ICT 연구를 주로 하고 있어요. 에너지ICT는 말 그대로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분야예요. 전력이나 열, 가스 같은 에너지 사용 정보를 센서와 통신 기술로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어떤 설비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지, 특정 시간대에 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지, 어떤 운전 조건에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지 등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거죠. 또 에너지 사용 패턴이 평소와 다르게 나타나면 이상 상황을 감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저는 에너지ICT를 연구하면서 단순히 에너지 사용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함께 보려고 노력해왔어요. 건물 에너지 분석 기술, 공장 에너지 관리 시스템(FEMS), 온실가스와 탄소 관리 기술 등을 연구해왔고요. 최근에는 에너지 관리에서 더 나아가 제조 현장의 탄소 관리나 AI 기반 공정 자동화 연구로도 관심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결국 에너지ICT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고,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산업 환경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에너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 데이터를 다룰 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A. 많은 사람들이 AI라고 하면 모델을 만드는 것부터 떠올리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아요. 특히 에너지나 제조 현장 데이터는 AI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깔끔하지 않아요. 센서 오류도 있고, 데이터가 비어 있거나 형식이 제각각인 경우도 많죠. 그래서 단순히 AI 모델을 적용하는 것보다 먼저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분석이나 AI 학습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정리하고, 필요한 형태로 가공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이터 엔지니어링이죠.
예를 들어 공장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하면, 어떤 설비에서 나온 데이터인지, 단위는 무엇인지, 정상 상태와 이상 상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해요. 그래야 AI도 제대로 학습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실제 현장에서는 모델 성능을 조금 높이는 것보다 데이터의 의미와 품질을 잘 관리하는 데이터 엔지니어링 관점이 훨씬 중요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Q. AI로 에너지 절감 기술을 개발하지만 반대로 AI 자체도 에너지를 크게 사용합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 저도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AI는 분명히 에너지 절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AI 자체가 엄청난 전력과 자원을 소비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특히 최근의 거대언어모델(LLM)은 학습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고, 데이터센터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AI를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결국 중요한 건 AI를 어디에 쓰느냐예요. AI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 절감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의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거나, 전력망 전체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설비의 이상을 미리 발견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거죠.
저는 에너지 분야 연구를 하면서 '부분 최적화'보다 '전체 최적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개별 설비 하나만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장 전체, 공급망 전체, 더 나아가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봐야 하거든요. AI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AI 모델 하나의 전력 사용량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관점에서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AI 성능만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얼마나 적은 에너지로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지, 또 사회 전체적으로 얼마나 큰 효율을 만들어내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저는 AI를 활용한 에너지 절감 기술도 결국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편리함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사용하는 자원과 사회적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거죠.
Q.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에서 연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A.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는 보통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필요한 연구 주제를 제시하면 연구자들이 직접 과제를 기획하고 제안서를 작성해서 경쟁을 통해 과제를 수주하는 방식이죠.
과제를 따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 기획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정부 부처나 전문기관이 연구개발 과제를 공고하면, 연구자들은 그 내용을 분석해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또 대학이나 기업, 다른 연구기관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역할을 나누고 연구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죠. 이후 발표와 평가를 거쳐 과제가 선정되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됩니다.
저는 연구에서 새로운 기술을 찾아보고 그것을 산업 현장의 문제와 연결하는 과정을 특히 좋아해요. 요즘에는 AI 기술 동향을 살펴보면서 제조나 에너지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출연연구소 연구자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사람인 동시에, 앞으로 어떤 문제가 중요해질지를 먼저 고민하고 새로운 연구 주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제를 기획하는 과정 자체가 연구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Q. 사기업에서도 연구를 해보셨는데, 정출연에서의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저는 연구를 할 때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기술 그 자체에 몰입하기 쉽지만, 저는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이나 ‘노동의 종말’ 같은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새로운 기술은 단순히 편리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AI도 마찬가지예요. 미래에는 AI의 혜택을 크게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AI를 위해 단순 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 기술 변화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문제 역시 연구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출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아무래도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하고, 대학은 상대적으로 학문적인 연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면 출연연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나 노동 소외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안전망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점이 출연연 연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 방향을 고민하고,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또 그런만큼 연구자일수록 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AI 기술 동향은 어떻게 살피고 계신가요?
A. 자주 참고하는 자료 중 하나는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새로운 기술이 대중에게 공개된 후 성숙하고 상용화되기까지 겪게 되는 기대치와 도입 과정의 변화를 5단계로 시각화한 곡선)이에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처음에는 기대가 과도하게 높아졌다가, 실제 한계가 드러나면서 관심이 줄어들고, 이후 실제 활용 가능성이 검증되면서 다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주거든요. 즉 기술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는 단순히 “성능이 좋아졌다”는 것보다 “이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최근에는 에이전트 AI나 피지컬 AI가 큰 화두잖아요. 그러면 제조 현장에서는 어떤 업무를 AI 에이전트가 대신할 수 있을지, 공장 설비와 연결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는 거죠.
중요한 건 최신 기술을 아는 것 자체보다, 그 기술이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저는 새로운 AI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걸 현장에 적용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가장 먼저 고민합니다.
Q. 작년부터 올해 봄까지 1년 동안, ETRI 밖에서 AI 연구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A. 네. 지난해에는 ETRI의 교육 파견 제도를 통해 1년 동안 KAIST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저는 2015~2016년쯤 처음 AI 과제를 수행하면서부터 온톨로지(Ontology)라는 분야에 꾸준히 관심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딥러닝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거의 모든 관심이 데이터 기반 AI로 쏠렸는데, 저는 한편으로 "데이터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가지고 있었거든요.
딥러닝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뛰어난 성능을 내지만,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품질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한계를 보입니다. 특히 제조 현장처럼 데이터를 얻기 어렵거나, 결과를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 온톨로지는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지식과 개념 간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기술입니다. 어떤 대상이 어떤 대상과 연결돼 있는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온톨로지가 설명가능 AI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관심 있게 보는 사례 중 하나가 팔란티어예요. (팔란티어는 다양한 데이터를 단순히 모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간의 관계와 의미를 온톨로지 형태로 연결해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온톨로지가 딥러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어요. 지금의 AI 성능은 딥러닝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다만 저는 앞으로의 AI가 딥러닝과 온톨로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향이 아니라, 두 기술을 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온톨로지와 AI를 결합한 플랫폼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요. 그래서 KAIST에 있는 동안 온톨로지와 지식그래프, 그래프 신경망(GNN), 거대언어모델(LLM) 등을 공부하면서 이런 기술들을 어떻게 에너지·환경·제조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아직은 작은 연구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데이터 중심의 AI와 인간의 지식 체계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AI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credit 김연정
김말희 연구원 사진: credit 최원준
*일부 ai,게티 이미지 사용